더 좋은 사람
나의 해방일지와 더불어,
인생 띵작이 몇개가 있긴 하다. 나는 잔잔한 드라마를 좋아하는 편이다.
몇해전 드라마 "도깨비"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드라마는 아니었으나,
그 안의 내용들이 간 혹 감동일 때가 있었다.
그래, 드라마는 그 감동을 억지로라도 짜 내야 드라마다. 그래야 몰입감이 생기니까.
그래서 현실은 아니지만 현실을 비추는 거울같은 각본이니까.
우리 각자의 인생도 드라마다. 소설로 쓰면 대박날지 모르는 각자의 소중한 드라마다.
오늘은 긴 감기투병 끝에 몸이 좋아져 글을 쓴다.
오늘은 도깨비 드라마에서, 삼신할매가 은탁이 고등학교 졸업식에 오면서 축하해주고
은탁이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았던 선생에게 이렇게 던진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수는 없었어?
문뜩 이런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더 좋은 어른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남자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아들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아빠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남편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상사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선임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운전자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손님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고객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시청자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청중일 수는 없었니?
더 좋은 사람일 수는 없었니?
내가 죽기 바로 직전에 삼신할매를 우연히 만나서 저런 질문을 받으면, 폭포같은 눈물 흘리며 참회하며 지나온 날을 후회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늘 부족한 사람들이라 꽉 채워질수는 없다.
총량의 법칙은 존재할지라도 정성적으로 가늠은 할 수 있어도
정량적인 총량은 구할수 없는거겠지.
물론이다, 늘 완벽한 존재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살다간 다 망친다. 몸도 맘도 인생도.
완벽해진다는 것 자체가 정성적인 것이라 정답은 없다는 얘기다.
내가 적당하다고 느껴야 그게 정점인 것이다.
적당히가 시소의 중간인 즉, 균형이라고 한다면
더 좋은 사람일 수는 없었니? 라는 질문에 대한 역계산은
인생의 절반 이상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겠다.
적어도 인생의 절반 이상은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그 말이었을 것이다 삼신할매는.
좋은 사람의 뜻은 궂이 말하지 않겠다.
사람마다 좋은 사람의 의미랑 가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한테 막 대하는 상대라도 나를 진정 아끼는 친구같고 친 형이나 동생같은 사람(내가 느낀다)이라면 나쁜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이듯이.
오늘 당신도 더 좋은 아무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