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나의 해방일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세상 신기한 드라마였다 첫 회부터. 손석구 배우가 뜨게 된 드라마 이기도 하다.
사람을 앞에두고 침묵하는걸 그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는,
첫 씬 부터 말이 없는 그 드라마가 불편했지만 어느새, 빠져들었다. 그 침묵과 과묵함에.
종방할때까지 사실상 말이 많지 않은 드라마였다. 그러고는 던지는 말이
살면서 마음이 정말로 편안하고 좋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이 있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나한테 물은적이 있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일상, 똑같은 패턴의 하루를 살고,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기하는 모든 나의 날이 과연 행복한가? 라는 질문이었다. 없다, 행복이가.
행복감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우리한테의 적당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을 가방에 꽉 채운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행복은 마치... 마지막에 담은게 가장 행복이기 때문에
이전에 채워진 행복은 이미 행복이 아닌,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래서 계속 갈구하게 된다.
누군가는 그런다.
그 안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라고. 말은 청산유수고, 쉽다.
나의 해방일기의 마지막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생각한 그 마지막의 메시지는 책임감으로부터 해방이고,
그리고 내가 나를 옭아메는 구차함으로 부터 멀어지는 것,
그리고 남 좋은일만 하는 노예같은 근성은 저 멀리 차버려야 한다는 것,
마지막은 내 사람과 타인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 위안보다는
남, 타인을 위함이 아닌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해방의 열쇄인듯 하다. 나를 위한 무언가의 실현.
그건 완벽한 무엇인가의 조립이나 구성이 아니다.
그냥 무던함, 특별하지 않지만 특이하지도 않은, 적절한 삶의 균형과 쉼도 있는 삶.
그게 바로 적당히 사는 삶 아닌가 싶다.
죽을때까지 나를 채근해서 뭔가를 이루었다고 치자. 뿌듯하겠지. 그럼... 행복하냐?
뿌듯함과 행복감은 다르다.
뿌듯함은 주로 특정 행동이나 상황에서 오는 일시적이고 집중된 성취감이고,
행복감은 더 넓은 범위에서 오는 삶의 기쁨과 평온함을 말한다.
후라이팬에 콩 볶아 먹듯 빠른 감성을 가지는 뿌듯함 보다는,
내면의 행복감을 더 고취시키려면 뭔가의 목적에 목메여 사는것 보다는 적당함, 그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삶이
정신건강에 더 이롭지 않을까?
나는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 무소유를 실천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그 근본의 뜻은 이해가 간다.
소유하지 않아야 욕심이 생기지 않고, 그래야 스트레스 받을일이 없을테니까 간단하게는.
보통 나와 같은 40 ~ 50대의 사람들 대부분은 20대에서부터 무던~히 지금까지 온 사람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어느 때(인지하고 있던 아니던), 또는 순간에 번쩍하고 사회로 진출한 순간이 있었을것이다.
돌이켜보면 위험하고 도전적이었떤 그 순간들이 바로 해방의 순간들이다.
기존의 것들에서 벗어나는 순간.
부모님과 떨어져 독립하는 그 순간도 해방이었을테고,
좌절감에 몸부림치던 그 순간으로 부터도 해방이었을테고,
나 스스로 돈을 벌어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도 해방이었을테고,
마음대로 여자친구랑, 남자친구랑 꿈에그리던 여행가게 된 그것들도 해방이었을테다.
이를 생각해보자면 해방은 결과적으로 "새로움, 시작, 도전, 신선함 등" 의 전환에서 시작이 된다.
나의 해방일지의 결말은, 늘 상 똑같은 집, 똑같은 길, 똑같은 직장, 똑같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변화되고 전환되면서 해방이 되었다라는 말이다.
그 해방은 누가 만들어주는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야 한다.

늘상의 똑같은 책임감을 나한테서 떨쳐내어야 한다.
말이 좋아 책임감이지,
남들은 나한테 그러라고 한 적이 없다.
웃기지 않나?
그러니까 책임감도 적당히 가져라. 그러다 병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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