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남매에 막내로 태어났다. 무주 산골에서.
짤막짤막한 어릴적 기억만 남아있고,
초등학교 5학년 말 즈음에 서울로 올라와,
독산동 길거리 한구석, 길거리 바닥에
이불을 깔고 아버지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남문시장 골목에서 바퀴벌레 드글거리는 단칸방에 지내면서
진짜 똥멍청이 초등학생 전학 생활에, 사투리를 쓴 시골촌놈이어서
왕따도 당하고 맞기도 했다..
나보다 수년전에 서울로 먼저 올라온 형과 누나와의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왜 기억이 없으리랴..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어서 기억을 지운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 형제들의 도움으로 이사간 집,
참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 똥손으로 집을 너무 많이 고쳤다. 비 전문가 핸들링으로.
학창시절내내, 화장실 뜯어놓아서 화장실 못간거..
매일 엄마의 한숨과 화 (火)..
좋은 기억 없던 그 집에서 아버지의 "암"을 처음 발견했다.
결혼하고, 직장때문에 대전으로 내려가 있던 어느 날,
여느때와같이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안된다..
느낌이 쌔한 기분으로 서울로 바로 달려와 문을 두드렸더니 인기척이 없다.
열쇄공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갔다.
적막하다. 늘 깨끗한 집이었지만 그날은, 뭔가 "정리" 한 날 같았다.
문뜩,
보훈병원~~, 약조제~~, 예약날자~~ 등등.. 기억이 문뜩 난다.
서랍을 뒤졌다. 아버지의 약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보훈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했다.
있단다. 그래서 달려갔다. 아버지 형제들한테 급히 전화를 돌리면서 갔다.
가서 수술실에 갔다. 엄마가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엄마가 막 운다.
낮설었다 엄마의 그런 모습. 그러더니 아빠가 아프다고 한다.
뭔가 이상했다. 응급으로 수술실이라면 집은 깨끗할수 없을텐데..
그러더니 엄마가 그런다. 아버지 암 말기라고.
그런 엄마를 보고 화내며 울어버렸다. 왜 그걸 말을 안했냐고.
웃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말 했으면, 뭘 할수 있었기에?
전화를 자주 했을까? 자주 찾아봤을까? 몸이 불편했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을 왔다갔다 했었을까? 아니면 용돈을 드렸을까? 또는 병원비라도 보태줬을까?
지금도 그걸 다 못하고 있는데....
입원실에 입원한 아버지를 보고 주물러 드렸다.
그러고 나름 노력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그 시간동안 아버지는 또 여전히 경제활동을 하기위해 고군분투 하셨다.
암으로 병원치료 받기 전 보다 더 강도 높은 직장을 다니셨다.
동네 친구였던 분이 교회 장로로 있던, 교회의 경비로 일 하셨다.
동네 친구란 개새끼는 강도높에 아버지를 부려먹은듯 했다.
말은 친구이고, 동네사람이라는 굴레를 씌운게 아닌지 모르겠다.
단순하고 외유내강의 성격인 아버지는
그 또한 감사한 일이라 열심히도 하셨다. 거진 10년을 말이다.
독산동에서 강동까지 매일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다니셨다.
그렇게 노곤하고 피곤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명절이고 상관없이 매일을 그렇게 하셨다.
그 친구라는 개새끼는 아픈 친구에게 그렇게 일을 시켰나보다.
직장이니 친구니 뭐니를 떠나 그럴순있다. 그러나 그 개새끼도,
그 개새끼가 믿던 그 교회도,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당한 근로의 댓가를 받지 못했다. 보험혜택도 받지 못했으며
오버타임이며 식대등, 휴식공간등 제대로 된 지원을 받아보지도 못했다.
그 친구라는 개새끼는 그랬다. 아버지가 진실로 믿었던 그 예수님이, 성스럽지만 졸라 100년을 족히 가는 딱밤을 그새끼한테
날려주시기를 바래본다.
그 시간동안, 천국과 지옥이 다시 오갔다.
그 직장생활동안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완치가 되셨고, 온전한 몸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시다,
끝나는 그 시점에 그 암이 재발을 했다.
아무것도 생각이 안났다...
아버지께 부탁했던 딱 한가지가 있었다.
내가 원하지 않은데 생활비라며, 아껴모은돈 주지 마시고
우리가족이 그 동안 해보지 못했던,
가족여행도, 가족회식도 많이 하자고 했다.
나는 그게 그리웠다.
남들처럼 평범한 가족의 생활.
내가 생각했던 상대적 기준에서의 그 생활,
어쩌면 보통의, 평범한 우리네 사람들의 생활이지만,
단지 내 모자람을 정당화 한, 내가 원하는 기준으로 내가 분리해놓은
다른 가정의 모습은 분명 내 가정과 다를 모습일거라는 그 "가면"을 씌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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